공부하기_아기곰님 글 필사_작성일 202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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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서 SVB 등 몇 개 은행이 파산을 하면서, 다음 불똥이 모기지 채권이 많은 은행으로 튀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이 퍼지고 있다. 2007년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재현되지는 않을지를 염려하는 것이다. 이에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는 왜 발생했는지, 그리고 그때와 지금의 유사점과 차이는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발생 원인은 복합적이기 때문에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서 주장하는 바가 다를 수 있다. 필자의 경우는 그 당시 미국에서 거주하면서 주변에서 벌어진 일들을 포함하여 필자가 경험한 내용을 위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금융소비자, 다시 말해 대출을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서브프라임 사태의 원인은 급격한 금리의 인상이라 하겠다.
2000년 초 IT버블이 꺼지면서 미국 경제가 휘청거리자, 그린스펀이 이끄는 FRB는 미국 기준 금리를 1%까지 급격히 낮추게 된다. "미국 기준 금리를 급격히 낮추는 것이 미국 경제가 그만큼 나쁘다는 증거로 시장에서 평가할까 두렵다."라고 그린스펀이 토로할 만큼 그 당시 미국 경제는 위태했었고, 금리 인하는 적절했었다.
급격한 금리 인하 덕분에 부채가 많은 기업들이 한숨을 둘리고, 미국 경제가 살아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저금리를 기반으로 미국 집값도 꿈틀거리게 되었다. 그러자 그린스펀의 FRB는 자산 시장에 끼기 시작한 버블을 제거하기 위하여 2004년 6월부터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미국 경제가 어느 정도 살아났다는 자신감도 한몫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금리 인상 속도와 폭이었다. 미국 경제가 적응하기 어려운 속도로 금리 인상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더구나 이런 급격한 금리 인상 시기에 FRB의 수장이 그린스펀에서 밴 버냉키로 바뀌게 된다. 학자 출신인 버냉키는 시장이 안정되었다는 확실한 지표가 나오기 전까지는 금리 인상을 멈출지 않을 것이라며, 기준 금리를 5.24%까지 올렸다.
역사에 '만약에'라는 말은 없지만, 만약에 그 당시 FRB의 수장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서브프라임 사태나 그 휴유증으로 발생한 리먼브러더스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린스펀이 책으로 경제를 배운 버냉키보다는 시장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에는 금리가 2006~7년보다 높았는데, 그때는 왜 서브프라임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고, 하필 2007년에야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졌을까? 그 비밀은 미국 주택담보대출, 즉 모기지 대출 제도에 있다.
미국의 대출도 우리나라와 같이 고정금리형이 있고, 변동금리형이 있다. 고정금리형은 대출받을 때, 금리가 정해지면 만기때까지 같은 금리를 적용받는 대출 상품이고, 변동금리는 금리가 수시로 변하는 상품이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대부분 고정금리형을 선호한다. 고정금리형 대출의 장점은 원금과 이자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본인의 상환능력에 따라 대출 규모를 정하면 된다. 다시 말해 미래를 설계하기 쉽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본인이 한 달에 2천 달러 정도 상환할 능력이 있다면, 상환이 끝날 때까지 그 수준을 유지하면 된다.
미국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처럼 집을 자주 사고 팔지는 않는다. 팔 때마다 6%나 내는 중개수수료도 부담이 되지만, 재산세가 매수가에 비례하여 오리기 때문에 예전에 사놓은 집에서 계속 사는 것이 절세 효과가 크다. 필자의 경우도 지난 20년가 미국 집값이 두 배 이상 올랐지만 재산세는 그 기간 동안 18% 밖에 오르지 않았다. 만약 같은 가격의 집으로 이사를 한다면 재산세는 두 배로 증가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 미국 주택 시장은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보다 장기 거주를 목적으로 하는 실수요자에 의해 주도되는 시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고정금리형의 대출 금리는 변동금리형보다 높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돈을 빌려주는 은행의 입장에서는 대출 기간이 길수록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에 금리는 높게 받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낮은 금리를 원하면 변동금리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한데, 문제는 변동금리는 금리 인상기에는 손해가 크다는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이 되자, 미국에서 ARM이라는 대출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ARM은 adjustable-rate mortgage의 약자로 직역하면 변동금리이지만, 2000년대 초중반에 유행한 ARM은 고정금리와 변동금리를 혼합한 하이브리드형이 대세였다. 다시 말해 3년 또는 5년 정도는 변동금리에 해당하는 낮은 금리로 고정해 주고, 그 기간이 끝나면 순수 변동금리처럼 시장 금리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에는 이 ARM이 고정금리형 대출상품보다 금리가 상당히 낮았다. 고정금리형은 장기 금리이기 때문에 10년 만기 미국 국채에 연동하지만 ARM은 미국 기준 금리에 연동하는데, 그 당시 미국 기준금리가 역사상 최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10년 국채 금리와 기준 금리 차가 많을수록, 또 기준금리가 오르기 시작할 때 ARM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의미이다.
과거에도 ARM은 있었지만 전체 대출 상품의 비중이 10~20%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2004~5년에는 35%나 되었다. 세 명중 한 명 이상이 ARM을 선택한 것이다.
문제는 ARM의 금리 고정 기간이 끝난 후에 벌어졌다. 그 당시에는 3년 또는 5년 고정 상품이 대부분이었는데, 3년 또는 5년의 기간이 끝난 후 금리가 급등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예를 들어 2002년에 5년 고정으로 ARM 대출을 받은 사람은 2007년부터 순수 변동 금리로 전환되는데, 이때 평균적으로 3.33%포인트 정도 금리가 올랐다. 2003년에 3년 고정으로 ARM대출을 받은 사람은 2006년에 3.92% 포인트 인상 요인이 발생한 것이고, 2004년에 3년 고정으로 대출받는 사람은 3.6% 포인트 인상 요인이 발생한 것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2003년 6월~2004년 5월 사이에 3년 고정으로 ARM 대출을 받은 사람은 평균적으로 3.00%의 대출 금리를 내면 되었다. (통상 은행 대출 금리는 기준 금리보다 2% 포인트 정도 높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사람이 3년 후에는 7.25%의 이자를 내야 하는 것이다. 한달에 3000달러의 이자를 내던 사람이 갑자기 7250달러의 이자를 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소득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출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이다.
이런 사람이 적으면 은행에서는 담보물을 경매에 넘겨서, 원리금을 회수하면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대출 상환을 멈추자 은행에서 경매를 통해 원리금을 회수하는 속도보다 부실 자산이 늘어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경영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바로 리먼브러더스 사태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더구나 대출을 갚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대출을 갚을 능력이 있는 일부 사람들도 덩달아서 대출을 갚지 않게 되었다. 소위 모럴해저드가 발생한 것이다.
미국은 금융소비자들의 천국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기관에 돈을 갚지 않으면 평생 그 딱지가 쫓아다닌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집이 열 채 있는 사람이 어떤 집의 대출금을 갚지 않더라도 그 집의 대출에 대해서만 추심이 들어가지 다른 자산에 대해서는 손을 댈 수 없다.
이런 제도상의 헛점 때문에 대출을 갚지 말라고 부치기는 사람들도 늘었고, 실제로 은행에서 이들에게 상당액의 부채를 탕감해주기도 했다. 어차피 받지 못할 돈이기 때문에 일부라도 받고자 함이었다. 이러니 은행이 줄줄이 망해 나갔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는 급격한 기준 금리 인상과 ARM이라는 대출 제도, 그리고 일부 사람의 모럴해저드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그러면 서브프라임 사태 직전보다 금리 인상 속도가 더 빠른 지금도 서브프라임 사태가 재현될 것인가? 그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원인 중 하나인 ARM의 비중이 그때에 비해 상당히 적기 때문이다. 2004~5년의 경우 전체 모기지 대출에서 ARM의 비중이 35%에 달했었다. 하지만 리먼브러더스 사태 발발 직후인 2009년부터는 모기지 대출 상품 중에서 ARM의 비중이 10% 아래로 떨어졌다. 해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5~9% 정도라 할 수 있다.
또한 ARM에서 금리를 고정해주는 기간도 예전보다 늘었다. 2000년대 중반은 3년 고정 상품과 5년 고정 상품이 대부분이었는데 비해서, 지금은 5년 고정 상품이 19.5%밖에 되지 않고, 대신 7년 고정 상품이 47.8%, 10년 고정 상품이 32.7%로 늘어났다. 다시 말해 7년이나 10년 후에 집을 팔 사람은 금리 상승기라 해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물론 전혀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2012년경에 10년 고정 ARM대출을 받은 사람의 경우는 지금 4.75% 포인트나 금리가 올랐으므로 원리금 상환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2023년 3월 22일 0.25%포인트 인상 반영) 이는 서브프라임 사태 때도 4.25%포인트 인상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10년 고정 ARM에 가입했던 사람들에 대한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출 상환액이 급격히 늘었기 때문에 집을 팔 수밖에 없다. 다행히 미국 집값은 1월에 바닥을 찍고, 두 달 연속 재상승 중에 있으므로 이들이 집을 파는 것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서브프라임 사태 때, 집 값이 떨어져서 에큐티(equity)라고 불리는 순자산이 마이너스였었다. 쉽게 말해 집값의 95%까지 대출을 받은 사람의 경우, 집값이 5%만 떨어져도 마이너스 에큐티가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는 차이가 있다. 지난 몇 년간 미국 집값이 급등했기 때문에 지금 팔아도 대부분 에큐티가 플러스이기 때문에 서브프라임 사태와 같이 채무불이행이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추가적으로 금리가 더 오르거나 집이 팔리지 않는 경우, 서브프라임 사태급은 아니더라도 금융 시장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상존한다. 다시 말해 ARM의 비중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적으므로 은행의 관리 범위내에 있는 것이지, 급격한 대출 금리 인상의 피해자는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금리가 오른다면 금리 인상의 후유증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