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기_아기곰님 글 필사_작성일 2023.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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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는 과연 없어져야 할 제도일까?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2021년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지난 2녀간 전국 아파트 매매가는 3.4% 상승한 반면 전세가는 오히려 3.5%나 하락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통상 전세가 상승률이 매매가 상승률보다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실제로 KB국민은행 통계가 시작된 1986년 1월부터 현재까지 37년간 전국 아파트 매매가가 475% 오르는 동안 전세가 상승률은 887%로 매매가 상승률보다 훨씬 높았었다.
그러면 지난 2년간 전세가는 왜 떨어졌을까? 매매가는 실수요뿐만 아니라 투자 수요에도 영향을 받는 반면, 전세 수요는 100% 실수요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는다. 전세가가 오를 것 같아서 전세를 몇 채씩 얻어 놓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난 2년간 우리나라 가구수는 줄어든 것이 아니다. 2021년 4월 2319만여 가구에서 올해 4월에는 2381만여 가구로 가구수는 2.7% 정도 증가했다. 주택 실수요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매가보다 전세가가 더 하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에 전세로 살던 실수요 중 일부가 월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임대수요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전세 수요가 줄어든 것이고, 그만큼 월세 수요가 늘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세 수요가 줄어들면 전세 공급, 다시 말해 전세를 놓는 매물도 줄어들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산 임대인 중에는 전세 보증금을 내어줄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세입자가 월세로 살고 싶다고 해도 모든 집주인이 이런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임대용 주택이 100가구가 있는 어떤 동네에 월세 30 가구, 전세 70 가구로 살고 있다가 계약기 끝난 후 전세로 살던 가구 중에서 10 가구가 월세로 가고 싶다면 혼란이 발생하는 것이다. 전세 형태로 임대를 주고 싶은 임대인은 70명인데, 전세로 살고 싶은 임차인은 60명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임대인 중에서 10명이 전세금을 내어 줄 능력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전세 공급 대비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전세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지난 2년간 벌어진 현상이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전국 아파트 임대 거래중 43.5%가 월세 거래였다. 이는 불과 2년 전이었던 2020년의 35.8%보다 7.7% 포인트나 높아진 비중이다. 쉽게 말해 1000 가구 중 77 가구가 전세에서 월세로 돌아섰다는 것이고, 그만큼 전세 수요는 줄어들고 월세 수요는 늘어났다는 뜻이다.
이렇게 세입자들의 수요가 전세에서 월세로 돌아서고 있는 것에는 전세자금대출 금리 수준이 월세보다 높아진 이유도 있고, 빌라왕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한몫 했다.
더 나아가 정부가 일부 정치권에서 지난 몇 년간 집값을 급등시킨 주범으로 전세를 끼고 집을 매수한 갭투자자를 지목하기도 했다. 마치 전세라는 제도가 없었다면 갭투자도 없었고, 집값 폭등 사태는 없었을 것이라는 논리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의 집값 폭등 사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 제도 자체가 없는)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벌어진 일이다. 역대급의 초저금리 환경과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해 무차별하게 뿌려진 과잉 유동성이 전세계에서 벌어진 집값 상승의 원인이다.
전세 제도는 여러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형태의 주거보다 저렴한 주거비로 거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얼마 전 OECD에서 발표한 흥미로운 자료가 있다. OECD BLI (Better Life Index)라는 국가별 삶의 질을 비교하는 자료인데, 그중에서 국가별로 소득 대비 주거비 수준을 비교한 자료가 있다.
위 표를 보면, 우리나라가 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 소득 대비 주거비가 가장 싼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높은 슬로바키아에 비해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임대아파트 등 복지가 잘 발달되어 있다는 북유럽 국가들이나 G7 국가들에 비해서도 월등하게 주거비가 낮은 편이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주거비가 월등하게 낮은 이유는 바로 전세 제도 때문이다. 최근 1~2년간은 전세 자금 대출 이자가 높게 형성되었기 때문에 예외라 하여도, 전통적으로 월세보다 훨씬 주거비가 적게 들어가는 임대 형태가 바로 '전세'라 하겠다.
해외에서 생활해 본 사람이라면 높은 임대료(월세) 부담에 혀를 내두르고 만다. 우리나라의 경우, 집주인이 높은 월세를 받고 싶어도 세입자의 입자에서는 전세라는 대안이 있기에 이를 거부할 수 있다. 이런 것이 OECD 통계로 나타난 것이다.
다행히 전세 자금 대출금리 수준이 하향 안정화됨에 다라, 세입자는 월세와 더불어 전세라는 선택권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서울 아파트의 경우 (전체 임대차 계약 중 월세 비중이 절반을 넘었던) 작년 12월을 정점으로 해서 점점 월세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반대로 표현하면 전세로 계약하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는 뜻이다.
작년 12월 52.7%에 이르렀던 월세 비중이 올해 1월에는 44.8%, 2월에는 43.4%까지 떨어졌고, 3월은 38.5%, (임대차 신고 기간이 아직 남아 있어서 최종 집계가 되지 않은) 4월은 37.7%까지 떨어져 2년 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동안 전세 계약을 백안시하고 지독한 월세 사라에 빠졌던 서울 지역 세입자들이 점차 균형을 맞추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세자금 대출금리의 하향 안정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런 현상은 시장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까? 한마디로 임대시장 내에 월세 수요는 줄고, 전세 수요는 다시 늘어난다는 것이기 때문에 월세 시장은 안정되고, 역전세란 해소에도 다소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전세 계약은 2년 단위로 진행되기 때문에 전세가가 전달에 비해 다소 상승하더라도 2년 전 가격에 비해 낮다면 역전세란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임대시장에서 역전세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역전세란 사태가 더 악화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정확히 2년 전에 비해, 임대시장에서 월세비중이 더 커진다면 역전세란이 가속될 것이지만, 월세 비중에 작아진다면 역전세란에 끼치는 압력이 완화될 것이라는 뜻이다.
시장에서 힘을 잃어가던 전세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소득은 높지만 모아 놓은 자산이 적은 사람에게는 월세도 좋은 선택이지만, 모아 놓은 자산은 많지만 소득이 낮은 은퇴 세대에게는 전세가 없어서는 안 될 좋은 제도이다. 전세 제도 유지 여부에 대해 정부나 정치권에서 섣불리 개입하기보다는 시장의 선택, 다시 말해 세입자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순리라 하겠다.